사내 게시판에 하이닉스 구성원의 불만 글이 하나 올라왔다. 3층 접견실에 앉아 있다가 씨앤씨 구성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났다는 글이었다. 그럴리가 없다는 답글이 많이 달렸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너무한 처사라는 답글도 있었다. 곧 담당자의 해명이 달렸고 그 내용은 이러했다.

하이닉스와 씨앤씨의 협의 하에 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그 공간은 씨앤씨 구성원만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해명을 보고 사람들은 수긍했다. 쫓겨난 사실이 기분 나빴지만 그렇게 협의된 사항이라면 수긍하겠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언제나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왜 이렇게 하면 안되나요?”라는 질문에, “규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긍해버린다. 하지만 왜 그런 규칙이 정해졌는지, 그런 규칙은 정당한 것인지, 충분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규칙인지 생각하는데 시간을 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원래 있는 규칙을 무너뜨리거나 바꾸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많지는 않다.

다른 예로, 인터넷에서 약간의 성인 컨텐츠만 찾아보려 하면 뜨는 Warning 사이트, 나는 정부가 왜 자신들의 기준으로 인터넷을 검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기술적인 측면으로도 프록시를 사용한다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사항이며, 기술적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사상을 정부가 통제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규칙과 법에 따른 통제에 대해 순응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담배값 인상안이 통과되어 ‘법’이 되면 수많은 흡연가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할테고, 보조금 지원 정책이 금지되면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스마트폰을 구입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어어…’ 하는 사이에 수많은 법들과 규칙이 생겨나고, 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따라야 한다는 상황이 반복된다. 사회의 변화에 너무나 무관심하고, 무조건적으로 순응하기 때문에 지금 사회는 점점 살기 빡빡해진 것은 아닌가. 어떤 규칙이 합리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도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많이 달라질 것이고, 사람들은 누구나 이기적이므로 자신의 이익에 합당한 규칙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낫다. 무관심하고 침묵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의 규칙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찾으려 목청껏 소리치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