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일생을 그 법칙을 찾기 위해 사유한다. 이 거대한 법칙으로 인해 우리는 수학, 예술, 철학, 심지어 종교에서도 공통적인 모습들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최근 내 머릿속을 돌고 있는 생각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것이다. 인간은 때로는 행복하다 느끼고, 때로는 불행하다 느낀다. 어떤 것을 간절히 바라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 인간은 행복을 느끼지만, 그 행복한 감정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거대한 재벌이 그리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들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갈구하게 될 것이고, 돈의 증가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권력의 근처에 서성거리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행복에 적응하며, 반대로 절망에도 적응한다. 하루아침에 사업이 망해 거리로 나앉은 사업가는 그런대로 삶의 의지만 있다면 다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가속과 감속은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때로는 빠르게 달리고, 때로는 느리게 달리며, 가끔은 사고도 날지 모르는 인생의 버스 안에서 달리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는 인간의 감정이 속도의 법칙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계(system)에서 등속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가속, 또는 감속이 있을 때이다. 현재의 상태보다 조금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의 가속 상태가 행복이며. 현재의 상태에서 못한 상황으로 떨어지는 감정의 감속 상태는 불행이다. 삶의 목표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지금 높은 위치에 있지 못함을 그리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랜 시간 행복을 느끼고 살려면, 최초의 시작점은 낮을수록 가속은 최대한 천천히 붙을수록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분식집에서 뷰엉이와 김밥을 먹으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주방에서 일하면서 알아듣지도 못할 랩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던 아주머니들, 일을 하며 돈을 벌고, 필요한 것들을 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문제이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주머니들은 웃으며 일하고 있는 그 순간 정말 행복해 보였다. 감정의 속도 변화는 우리의 행복감과 불행함을 크게 부각하지만, 등속 운동을 하는 중에도 행복감을 느낄 방법은 있다. 감정의 속도 변화에 반응하는 것 뿐 아니라, 같은 속도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의 경치를 보고 즐기며, 옆 자리에 앉은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