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건을 사야겠다는 욕구가 사라진건 별로 많지도 않던 연봉을 받던 2015년 벤츠 CLS를 과감하게 지르고 난 후였다. 그 이후로 그 정도의 가격이 되는 물건을 딱히 살 일은 없었고, 그다지 비싸지 않은 물건은 사고 싶으면 그냥 살 수 있는 상태가 지속되자 소비에 대한 욕구는 자연히 줄어들었다. 나는 항상 부자가 되고 싶었고, 검소하게 살고 싶었다. 돈이 많아야 검소할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은 검소할 수가 없다. 그냥 쓸 돈이 없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부자만이 검소할 수 있다. 소탈하게 살고 싶은 삶의 전제조건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과도 같다. 어쨌든 나는 딱히 소비를 즐기지 않는다. 저녁 시간은 온전히 가족과 보내어 술자리를 갈 일도 없고, 태어나서 담배를 피운 적도 없어 회사를 다니는 교통비 외에는 돈을 쓸 일이 없다. 점심값은 회사에서 지원이 될 뿐 아니라, 다이어트를 위해 난 점심을 먹지 않는다.

경력이 늘어가면서 연봉이 늘어가지만, 내 생활은 고시원에 사는 복학생 같아서 돈을 쓸 일이 없다. 복학생보다 더 돈을 쓸 일이 없다. 집에서 뷰엉이가 밥을 차려주고, 복학생이었다면 하루에 두 번 갔어야 할 당구장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돈이 쌓인다. 최근에 내가 목돈을 지출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갤럭시 S8을 2년 정도 쓰다가 상태가 이상해 지는 느낌에 갤럭시 S10을 구했다. 나는 최신 카메라가 달린 폰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백만원 넘는 신제품을 사고 싶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을 뒤져서 매장에 전시됐던 갤럭시 S10을 65만원쯤에 어렵게 구했다. 아주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2년 후에는 어떻게 폰을 싸게 살 수 있을지 벌써부터 고민이 되지만, 고민은 2년 후로 연기하기로 했다. 또 40만원 정도의 안경을 새로 맞추었다. 원래 쓰던 안경은 3년 넘게 써서 렌즈에 코팅이 다 벗겨졌었다. 콧잔등에 자국이 심하게 파이는 느낌에 이번에는 좀 더 가벼운 티타늄으로 맞추었다. 여전히 콧잔등에 자국이 생겨서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그마 DP1 Quattro를 중고로 37만원에 구매했다. 시그마 포베온 센서의 마력에 빠져 들면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의 카메라는 총 5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골프 레슨을 받는데, 연습장 비용까지 해서 한 달에 50만원 정도 지출했다.

돈이 어느 정도 충분해 지기 시작하면 물건을 사기보다는 경험을 위해 돈을 쓴다고들 한다. 흔히 말하는 여행을 가거나 무언가를 배운다거나 하는 일이다. 내가 최근에 한 지출들은 물건을 산 것일까 경험을 산 것일까? 골프 레슨비용 정도를 제외하고는 물건을 구매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물건을 구매하는 동시에 경험을 구매했다. 새 스마트폰으로 나는 훨씬 빠르게 삼성페이를 사용하고 웹서핑을 하고 음악을 듣는다. 새로 산 안경을 통해 나는 더 맑은 세상을 보고 있다. 중고로 구매한 DP1Q는 내 창작욕구를 불붙게 해서 소소한 산책을 하며 찍는 사진들이 쌓여간다. 나는 물건을 샀지만, 그 물건은 내가 다른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들이다. 세상에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지 않는 물건이 있을까? 그래서 난 돈이 많아지면 물건 대신 경험을 사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말은 경험이란 여행이나 배움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 여행 관계업자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야겠다는 욕구가 사라졌다면서 최근 이렇게 많은 물건을 산 내가 이중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난 욕구에 구매하지 않았다. 난 필요에 의해서 구매했을 뿐이다. 그 필요를 만든 것이 욕구일 수는 있지만 내 스스로는 필요라고 합리화 한다. 내 마음이 편해졌으니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