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좋아함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므로 어떤 사람은 한 번에 아이스크림바를 두 개 정도 먹는 것으로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이스크림에 대한 나의 사랑을 표현하려면, 나는 아이스크림을 광적으로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아이스크림바를 보통 한자리에서 15개 정도를 먹고, 베스킨라빈스에서 쿼터(4가지 맛을 고를 수 있다)를 혼자 앉은 자리에서 다 먹는다.

바 종류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호두마루이다. 하나를 껍질을 까서 먹고 다시 냉장고로 가서 또 하나를 꺼낸다. 방으로 돌아와서 먹고 나면 다시 냉장고로 간다. 냉장고로 가는 길은 걸음걸이를 좀 빠르게 하는 편이다. ‘이렇게 잰걸음으로 가면 조금이나마 칼로리를 소모하겠지’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한 후에 말도 안되는 생각임을 1초 만에 깨닫는다.

보통의 마트는 아이스크림을 미끼 상품으로 이용한다. 또 유통기간이 긴 아이스크림의 특성 상 재고를 밀어내기 위해 가격을 떨어뜨려서도 판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마트에서도 아이스크림을 할인된 가격으로 판다. 아이스크림을 20여 개 사서 오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미혼일 때는 내가 항상 사먹었는데, 지금은 뷰엉이가 아이스크림 공급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이스크림 섭취량 조절하기가 더 힘들다. 다이어트를 굳게 마음 먹고 있다가도 뷰엉이가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오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심기가 불편해지다가도,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다. 때로는 내가 힘이 없거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뷰엉이는 급처방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온다.

아이스크림을 먹은 빈도와 양으로만 친다면 나는 주위에서 흔히 찾기 힘든 상위 1%의 아이스크림 전문가일 것이다. 나는 미묘한 온도 차이에 아이스크림의 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집 앞 마트의 문제는 냉동고 온도를 너무 낮게 설정해 둔다는 것이다. 호두마루를 씹었을 때는 처음에는 이가 조금의 저항을 느끼며 들어가다가 툭하고 부러질만큼의 경도가 최적의 상태이다. 너무 녹아버리면 뭉개지는 느낌이 들고, 너무 낮은 온도에 있던 호두마루는 이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다. 우리집 앞 마트에서 사온 호두마루가 가장 맛있을 때는 월요일이다. 아마 아이스크림이 월요일마다 들어오나 보다. 들어오자 마자 싱싱했던 아이스크림이 마트의 냉동고에 오래 있으면 얼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너무 딱딱한 상태라 맛이 좀 떨어진다. 회도 그렇지만 아이스크림도 갓 들어와 싱싱할 때 먹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좀 크면서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주요 장소가 바뀌었다. 뒷베란다 문을 열고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낸 후에 조용히 뒷베란다 문을 닫는다. 아이들이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며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나를 발견하면 자기들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할테고, ‘너희들은 배가 아파져서 먹어선 안돼’라는 말로 제지하겠지만, ‘그럼 아빠는 왜 자꾸 먹는거에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한다. 언제나 내가 하는 답은 ‘아빠는 어른이라서 몸도 너희보다 훨씬 크잖아?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열 개 먹어도 되는거야’ 정도이다. 아이들이 고집을 부리지는 않아 금세 알아듣고 돌아가기는 하지만, ‘아빠, 아이스크림 먹어요?’라는 말을 듣는 자체가 견제 당하는 느낌이라 편하지가 않다. 나에게 아이스크림은 명상에 잠기며 편안하게 먹어야 하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이들이 나의 위치를 파악 못했을 때에는 뒷베란다에서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앞 쪽의 아파트가 괜히 흥미로워 보인다. 저 멀리 산과 송전탑 같은 것도 보인다. 별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이지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풍경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평생 담배를 입에 대본적도 없지만, 담배를 피는 사람들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풍경을 바라보며 내뿜는 담배 연기와 풍경을 바라보며 베어먹는 아이스크림의 느낌이 왠지 비슷할 것 같지 않은가?

바 종류를 먹을 때 이런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베스킨 라빈스는 좀 다른 방식이다. 일단 요즘 들어서 베스킨 라빈스는 금요일마다 먹게 된다. 금요일은 한주가 끝나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져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지는 요일이다. 이런 이유에 더 명분을 실어주는 것이 배달의 민족에서 금요일마다 사용할 수 있는 베스킨 라빈스 2천원 할인쿠폰을 준다는 점이다.

내가 먹는 맛은 정해져 있다. 예전에는 슈팅스타, 아몬드 봉봉을 먹기도 했었고, 월넛도 먹었었다. 최근에는 아빠는 딸바봉도 자주 먹었다. 아빠는 딸바봉은 초코볼 같은 것이 씹히는 식감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딸기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 딸바봉의 ‘딸’자가 딸기와 연관이 있는 것이 명확해 보인다. 같은 딸기 아이스크림이라도 베리베리 스트로베리는 좀 더 과일의 느낌이 나는 산뜻한 맛이라면, 아빠는 딸바봉은 좀 더 우유가 들어간 진하고 끈적한 느낌의 딸기 아이스크림이다. 너무 맛있어서 한국 민속촌에서 연속 네 개를 사 먹었던 프레페레와 좀 비슷한 느낌이다. 한국 민속촌에서 내가 프레페레 포도맛을 세번째 사러 갔을 때 가게 아저씨는 또 오셨냐고 아는척을 했고, 네번째 갔을 때도 또 오셨냐고 아는 척을 했다. 그런 노골적인 눈치를 주는 행동만 아저씨가 하지 않았다면, 나는 다섯개, 여섯개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피스타치오 아몬드를 즐겨 먹는다. 얼마 전에 가게마다 피스타치오 아몬드가 사라져 단종된줄 알고 충격을 받아 식음을 전폐할뻔 했지만 다행이 일시적으로 메뉴에서 빠진 것으로 밝혀졌다. 배달의 민족에서 베스킨 라빈스를 시킬 때 나같은 매니아를 고려하지는 않은 것 같다. 첫번째 맛 두가지를 골라야 하고, 두번째 맛 두가지를 골라야 한다. 그리고 내가 고른 맛이 없을 때를 대비해서 대체맛 3가지를 골라야 한다. 나는 피스타치오를 3개, 아몬드 자모카 훠지 1개를 골라야 하기 때문에 이 시스템에서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항상 요청사항에, ‘피스타치오 아몬드 3개 아몬드 자모카 훠지 1개로 주세요’라고 적는다. 사실 피스타치오 아몬드 맛을 4개로 모두 채워도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자모카 훠지를 1개 시키는 이유는 뷰엉이가 그나마 이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뷰엉이를 주겠다는 명분으로 자모카 훠지를 1개 끼워넣기는 하지만, 뷰엉이가 맛도 보지 못하고 내가 다 먹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꺼면 피스타치오 아몬드 4개가 더 좋았을텐데.

누군가에게 내가 아이스크림 먹는 이야기를 했더니, ‘어… 견과류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네요?’라고 했다.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정말 난 견과류가 들어간, 또는 견과류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호두마루부터 베스킨 라빈스의 많은 아이스크림들이 견과류가 들어간 것들이다. 아이스크림 특유의 차갑고 달콤한 맛에 견과류의 고소한 맛과 씹는 식감이 더해지면 최고의 맛이 난다.

베스킨 라빈스를 시키면 얼마전부터 뚜껑이 밀봉되어 온다. 손잡이를 잡아서 뜯어내고 나도 꽉 닫혀있는 뚜껑을 열기가 쉽지가 않다. 굳이 왜 이런 변화를 했는지 투덜대면서 힘을 줘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오늘은 주문을 할 때 해피씰 옵션을 선택하면 30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부분을 발견하고는 옵션을 해제했다. 아이스크림 봉투에 테이프로 붙여주는게 해피실이라 생각했고, 그 테이프를 붙이는데 굳이 300원을 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도착한 아이스크림의 봉투에는 테이프가 그대로 붙여져 있었다. 뭔가 싶은 생각에 안에 있는 아이스크림 통을 꺼냈더니 내가 불편하게 생각했던 밀봉된 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해피씰은 바로 이 부분을 말하는 것이었고, 꽤 오랜시간 ‘해피’씰은 나를 unhappy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편하게 뚜껑을 열고 아이스크림을 퍼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미 재웠기 때문에 여유있게 아이스크림 본연의 맛을 느끼면서 먹을 수 있었다. 베스킨 라빈스를 먹을 때도 아이스크림의 온도는 중요하다. 가장자리부터 훑어서 먹으면 맛이 더 좋아진다. 가장자리는 아무래도 빨리 녹기 시작하는 부분이고, 조금 녹은 부분을 먼저 뜨면 액체가 된 부분과 고체인 부분이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먹기 딱 좋은 상태가 된다. 봉지 안에 있는 드라이아이스는 빨리 빼서 던져두는 것이 좋다. 아이스크림 통에서 드라이아이스가 닿은 부분은 지나치게 얼어붙어서 딱딱하게 된다.

완벽한 상태로 쿼터를 다 먹고 핑크색 숟가락을 들여다 보았다. 이번 주문에서는 숟가락을 4개 달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왜 숟가락 달라는 옵션을 선택 안해놓고는 집에 디저트 스푼이 몇 개 없는걸 걱정했던걸까. 티스푼들이 다 낡아서 새로 디저트 스푼을 살 생각에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다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어 포기하고는 했었는데, 베스킨 라빈스의 핑크색 숟가락이 있으면, 내가 굳이 새로 숟가락을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해피씰의 비밀도 풀어냈고, 디저트 스푼도 더 이상 살 필요가 없어져 흡족한 상태가 되었다. 더부룩한 배를 붙잡고 최대한 먹을 것을 참으며 주말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