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있어보면 똑똑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특히나 분석하고 나열하는 것에 있어서는 다들 대단해 보인다. 분석한 내용들을 말하는 것을 보면 청산유수다. 문득 내가 그들보다 무엇이 나아서 연봉을 몇 배나 더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의 강점은 속도와 완결성이다. 수능에서 고성적을 받은 상위 대학출신자라면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추론하는 능력은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고객을 분석하든 비즈니스를 분석하든 거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속도와 완결성은 실행의 문제다. 누군가는 프로젝트를 완수해 내고, 누군가는 실패한다. 이렇게 똑똑한 친구들이 모여서 하는 프로젝트가 왜 실패할까? 프로젝트의 실패란 별 것이 아니다. 누군가 명확하게 프로젝트는 실패했음을 알리지 않는다. 프로젝트가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완료되지 않으면 대부분 실패했다고 보면 된다.

프로젝트가 지지부진 해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원인은 우선순위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순위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기회비용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나는 불이 난 집의 예를 들고는 한다. 평소라면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은 집의 유지에 꽤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집에 불이나서 사람들이 뛰쳐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문을 막고는 그 밑에 있는 머리카락을 청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극단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프로젝트 상황에서는 이런 짓을 저지르는 인력이 절반 이상이다. 나는 이들을 헛똑똑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하는 행태는 주로 두 가지인데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는 특성에서 나온다. 첫번째로 이들은 완성도를 중시하는 나머지 속도를 잃어 버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혼란스럽고 애매한 상황이 지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여야 한다. 살이 붙고 나면 옷을 입혀야 하고, 옷을 입힌 후에 화장을 시키고 머리 스타일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뼈대를 조립하기 전에 어떤 옷이 어울릴지 이야기 한다. 헤어 스타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행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결국 컨텍스트가 분리된다는 것에 있다. 뼈를 조립하는 것도 복잡한데 머리 속에 이미 옷을 고를 생각을 하고 있으니, 뼈대가 제대로 조립될리가 없다. 예쁜 옷을 입히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시점에 생각할 일이 아니란 것이지. 그런데 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정해지기를 바란다. 컨텍스트는 산만해지고, 완벽하지 못한듯한 상황에 이들은 혼란스러워 한다. 이들은 완벽한 상태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70의 완성도로 일을 하고 반복적으로 90의 완성도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들은 100의 완성도를 생각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한다.

두번째 역시 첫번째와 비슷한 이야기며 이어지는 이야기다. 첫번째는 시간과 순서에 대한 우선순위 개념이라면, 두번째는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다. 페이지의 단순한 문구를 어떻게 할지 정하느라 다른 작업을 하지 못한다. 열 명을 모아서 한 시간 동안 회의를 진행한다. 페이지의 문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핵심 기능에 비해서는 중요도가 한참 낮으며, 언제든지 수정 가능하다. 그런데 페이지의 문구를 논의하느라 핵심 기능들의 개발이 딜레이 된다. 심지어 문구나 디자인 하나를 정하기 위해 사업팀과 프로덕트팀, 디자이너, 기획자, 개발자들끼리 한자리에 모인다. 이건 ROI 측면에서 봤을 때도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문구 수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기능을 개발한 후에 나중에 해도 된다는 얘기다.

이런 우선순위의 부재 상황을 막아주는 것이 리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남보다 프로젝트 성공률이 높았던 이유는 우선순위를 잘 정했고, 기회비용을 고려하여 지금 중요하지 않은 것은 버렸고, 그 선택을 누구보다 빠르게 하는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통하지 않았다. 권위의 부재일 수도 있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짧아 신뢰가 형성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빌어먹을 밀레니얼 세대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바보의 의견도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바보의 의견도 동일한 한 사람의 의견이다라는 얘기는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그렇다. 민주주의 사회가 그렇다. 나의 표나 동네 바보형의 표나 한 표의 가치를 가진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고민을 하게 되는거지. 회사에서 민주주의가 필요한가? 밀레니얼을 제대로 대하기 위한 지침들은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민주주의는 독재가 되지 않도록 효율은 덜하지만 천천히 합의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체제다. 효율이 덜해서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까지 한 체제가 민주주의다. 항상 커뮤니케이션은 혼란스럽고, 정보는 무수히 전달되어 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는데 노력을 들여야 한다.

나는 회사의 가치는 빠른 이익 창출이고, 이것을 위해서 효율성은 기본 전제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헛똑똑이들의 수많은 태클로 프로젝트 속도는 나지 않고, 혼란스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불이 난 상황을 생각해보자. 누군가가 문을 가로막고 머리카락을 줍고 있다면, 나는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발로 그 놈을 걷어차버릴 것이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도 그렇게 하려 한다. 걷어 차인 놈은 집을 깨끗이 하는게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못하게 하느냐고 불만에 가득차서 날 미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는 이런 강제성을 가져야 한다. 리더는 전체 목표를 크게 보고 덜 중요한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의 리더십을 좋아한다. 규율이 있어야 하고, 리더는 사랑받기 보다는 차라리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 리더는 외롭겠지만 외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이 말을 듣고 누군가가 말했다.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즘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들인데, 너는 애초에 권력이 없는데 그게 통하겠냐고. 그게 정답이다. 권력이 없는 자는 사람들의 지지를 업고 영향력을 높일 수 밖에 없다. 권력도 없는 놈이 한비자나 마키아벨리 흉내를 내면 우스운 꼴 밖에 안되는 것이다. 사람들이랑 노닥거리며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인지 여기를 떠나는게 맞을 것인지. 나의 목표지향성이나 추구하는 커리어를 봤을 때 당연히 떠나는게 맞는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