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다. 내 삶도 벅차고 바쁜데 남의 사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에 관심이 가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경제/경영서적들, 자기계발서, 인문도서들만 주구장창 읽었었다. 새로 출간되는 책들 중 재미있겠다 싶은 책들을 모두 읽다보니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번째는 대부분의 책을 읽어 더 이상 읽을만한 책이 없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나오는 책들의 대부분이 이미 했던 이야기를 조금씩 틀어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지심리학 관련 책만해도 ‘생각에 관한 생각’이 나온 이후로 비슷한 내용들을 조금만 바꿔 짬뽕같이 만들어 놓은 책들이 여러권 떠오른다. ‘설득의 심리학’, ‘넛지’, 심지어 ‘희망버리기 기술’에서도 비슷한 내용들을 말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책을 잠시 멀리하다가 갑자기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빅픽쳐’는 예전부터 특이한 느낌의 표지 때문에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최근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빅픽쳐’라는 플러그인을 써서 세뇌당한 것일수도 있다.  ‘빅픽쳐’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평균 이상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 생활을 지루해하며, 자신이 꿈꾸던 사진가의 삶을 살지 못해 불만인 주인공의 모습이 바로 나의 삶으로 감정이입되었다. 나 역시 일상적인 삶을 지루해하고 있으며, 사진가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주인공과 일체감이 생각보다 빠르게 느껴져 책을 몰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벤은 살인을 저지른다. 이웃에 살고 있던 아마추어 사진가 게리는 벤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고, 그것을 알아챈 벤은 게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발적으로 게리를 죽이게 된다. 나는 작가가 벤과 게리를 하나에서 분리된 이중 자아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벤과 게리는 둘 다 유명한 사진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사진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벤은 아버지의 강요를 이기지 못해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반면 게리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사진가로서의 삶을 택했다. 게리는 벤이 포기했던 삶을 대신 살고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이렇게 보면 게리와 베스가 불륜을 저지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벤이 진정으로 원하던 사진가의 삶을 사는 게리는 벤의 온전한 자아다. 벤의 온전한 자아인 게리와 진정한 작가를 꿈꾸는 벤의 아내 베스는 교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벤과 게리는 서로의 컴플렉스를 자극했다. 아내와의 정신적 교감을 실패한 벤을 조롱한 게리는 사실 벤이 스스로 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조롱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게리와 베스의 불륜이었지만 벤이 정말 괴로웠던 이유는 아내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다. 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포기했기 때문에 진정한 작가를 꿈꾸는 베스와 교감할 수 없게 되었다. 벤은 게리가 허세만 가득한 실패한 사진가임을 조롱한다. 이건 벤이 사진가가 아닌 변호사를 택할 때 내면에서 방어기제로 내세운 이유일 것이다. 사진가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이고, 그런 생활은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삶일 것이라고.

벤과 게리의 싸움은 결국 두 자아의 싸움이다. 벤은 게리를 죽임으로써 현재의 자기 선택을 더욱 확고히 한다. 그런데 게리의 행세를 하기 시작함으로써 과거 벤이 했던 선택을 번복하려 한다. 과거에는 변호사의 삶을 선택했지만, 게리를 죽이고 다시 게리 행세를 하는 것으로 사진가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정한다.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살인이 일어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한 벤의 노력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벤이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끔찍한 방식의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벤의 범죄가 드러나지 않기를, 또 벤이 결국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어쩌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건 벤이 아닌 베스였고, 선을 넘은 것도 베스와 게리였다.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벤이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과, 그 범죄사실만 빼고 보면 너무나 선량한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알게 때문일 것이다. 이건 마치 영화 ‘조커’를 보면서 조커의 상황에 공감을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사람은 공감을 하는 동물이다. 타인의 상황을 모르면 비난을 하지만 모든 상황을 알게 되면 공감하게 된다.

변호사의 옷을 던져버리고 벤은 사진을 다시 찍기 시작한다. 게리와 벤의 차이는 게리는 실패하면서도 끝없이 자신의 사진을 내보이고 사진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고, 벤은 지하의 암실에 자신의 사진을 숨겨두고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게리로 다시 태어난 후에 찍은 사진도 루디의 돌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면 공개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벤은 우연한 기회를 얻어 사진으로 성공하게 된다. 좋은 사진을 찍는 것도 우연에 크게 기대며, 그 사진이 성공하는 것도 우연의 힘을 빌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우연한 성공은 불확실성의 영역이지만, 수많은 시도를 전제로 한다. 어쨌든 벤은 시도했고 우연에 힘입어 몬타나에서 성공하게 된다.

시도하지 않았던 벤은 게리로 태어난 후 ‘시도’를 했고 사진가로 성공한다. 벤은 게리를 죽였지만, 게리가 꿈꾸던 것을 게리로서 이루어 게리를 살게 했다. 벤은 게리를 죽인걸까 살린걸까. 아니면 성공한 것은 죽은 게리인가, 게리의 옷을 입은 벤인가. 사진가로 성공하지 못했던 변호사 벤이 게리로 성공했을 때 벤의 기분은 어땠을까. 성공한 벤은 명성이란 헛된 것임을 보여준다. 자아 정체성을 잃었을 때의 성공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다.

삶에서 문득 떠나버리면 목적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떠나버리고 싶을 때 목적지는 어디일까?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것은 돌아올 장소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돌아올 안식처는 어디일까? 결국은 사람이었다. 벤은 앤을 만나 정착하게 된다. 살인자이며 거짓말쟁이인 벤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것은 앤이다. 벤이 진정으로 되고 싶었던 사진가로서의 역량과 그의 사진을 알아봐준 사람도 앤이다. 벤이 게리에서 앤드류로 다시 태어났을 때 사람들이 그의 사진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자 화를 낸 것도 앤이다.

벤은 베스와의 결혼에서 행복하지 못했다. 게리 행세를 하던 시기에도 앤과 행복하지 못했다. 벤이 완전히 솔직해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두 번째 부활후에야 벤과 앤은 행복한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언제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검은 먹구름은 그들의 머리 위에 평생 떠다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