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화려함에 끌리지만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결국 사람들은 편한 것을 찾게 된다. 나도 그랬다 노션을 보는 순간 그 화려함에 반해 바로 결제를 했었다. 노션은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제공하겠다고 나를 유혹했다. 특히나 원래 사용하고 있었던 에버노트가 나에게 줄 수 없었던 것들 때문에 더욱 끌렸다. 에버노트를 사용하면서 부족했던 부분은 노트를 좀 더 예쁘게 꾸미고 싶은데 형광펜 칠하는 정도가 전부였고, 노트북 아래에 여러 단계의 노트북을 설정하고 싶은데 한단계 밖에 지원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노션은 블록형 컴포넌트를 제공해 텍스트와 이미지의 위치를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었고, 위키페이지처럼 모든 것이 페이지로 이루어져 페이지와 페이지 간의 구조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트렐로에서 사용하고 있었던 칸반보드가 인라인으로 지원되었고, 구글시트나 PDF도 임베드로 페이지에 띄울 수 있었다. 업무가 혼란스러운 상태로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고, 과도할 정도로 오거나이징 하는 것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노션을 바로 설치하고 내 모든 업무들을 구조화 하고 싶은 욕망에 빠져 들었다. (주화입마…)

깔끔하게 정리된 나의 인생

노션으로 내 인생을 정리해 나가는 초기에는 너무나 신이 났다.

이력서도 최신으로 이렇게 관리했었지...

그런데 이걸 쓰면 쓸수록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는거지. 마치 40살 아재인 내가 비키니를 입고 홍대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미묘한 UX가 나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사용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부정적인 감정이 누적되었다. 결국 누적된 불편함 때문에 오늘 내가 노션을 구독해지 하고 다시 에버노트를 결제한거겠지.

좀 과격하게 노션을 표현하면 ‘예쁜 쓰레기’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예쁘게 잘 모아놨는데, 사용이 너무 불편하다. 블록형으로 드래그해서 어디든 옮길 수 있다보니 기본적인 텍스트 입력시에 커서가 원치 않는 위치로 튀기도 하고, 기민한 반응속도가 나오지 않는다. 노트가 뜨고 내가 편집을 할 때까지 딜레이도 상당하다. 특히 페이지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 현상은 더 심해진다. DB형 테이블을 사용해서 데일리 스크럼을 기록했었다. 그런데 미팅의 수가 늘어날수록 속도저하는 심각했고, 심지어 pagination도 지원하지 않아 스크롤은 무한히 길어졌다. (스크롤 속도가 느릿느릿하다는건 덤)

길어지는... 아니 느려지는 스크롤

최악인 것은 노션을 안드로이드폰에서 열었을 때다. 로딩이 엄청나게 오래 걸려 웬만한 상황에서는 노션을 열기가 겁날 정도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기민하게 기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건 엄청난 부담이다.

마지막으로 에버노트와 장단점을 다시 한 번 비교해보자.

에버노트는 PC나 앱에서의 사용속도가 빠르고, 검색도 용이하다. 심지어 PDF나 이미지 내의 글자까지 검색이 된다.

노션은 많은 기능으로 풍부한 사용성을 제공하고 깔끔한 레이아웃을 제공한다. 그런데 너무 느리다.

다시 한 번 노트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위에 본 것처럼 나는 수많은 페이지를 카테고리로 나누어 만들었다. 그런데 일상에서 업무를 볼 때 사용하는 페이지 외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트렐로 형식의 보드는 간단한 체크박스로 To-Do 리스트를 관리하면 된다. 노션은 처음부터 ‘예쁘게 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완성도가 있어야 하고, 이것은 블로그 등 발행물의 영역이다. 노트는 내가 빠르게 정리할 수 있어야 하고, 빠르게 검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노트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실행속도와 검색속도가 빠르고 사진을 찍어 명함이 바로 저장되고, 웹클리핑으로 웹을 바로 저장할 수 있는 에버노트의 강점들이 바로 노트가 가져야 할 강점이다. 반면 트렐로의 장점은 노트앱이 가져야 할 장점이라기 보다는 포스팅 툴의 장점들이 아닐까 싶다. 블로그를 작성할 때 워드프레스 플러그인의 빌더들을 쓰면서 노션의 UI/UX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블로그를 작성할 때는 레이아웃도 잘 맞춰야 하고 예쁘게 보여주는 것을 신경쓰는게 맞겠지.

결론은 오늘 노션을 해지하고 에버노트를 재구독 한 것을 보면 눈치챘을 것 같은데… 에버노트는 노트의 본질을 추구했고, 노션은 노트앱이라고 하지만 노트의 본질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럼 당연히 노트앱을 쓰려면 에버노트를 써야지!

코끼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